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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 입문작 추천 TOP 2 (초보자용)

by 반복이답 2025. 3. 27.

목차

  • 영화 벌집의 정령
  • 영화 남쪽
  • 초보자를 위한 감상팁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영상미로 세계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 수는 적지만 한 편 한 편이 깊은 철학과 정서를 담고 있어 오히려 더욱 큰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에리세의 영화는 빠른 전개나 명확한 결말보다 감정의 흐름과 기억의 잔상에 집중하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다소 낯설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에리세 영화에 처음 입문하는 관객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대표작 두 편, 『벌집의 정령』과 『남쪽』을 중심으로 각각의 특징과 감상 포인트를 안내합니다. 느리고 사색적인 영화를 좋아하거나 한 편의 영화로 깊은 여운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입니다.

벌집의 정령(좌)과 남쪽(우) 영화 포스터
벌집의 정령과 남쪽

 

영화 벌집의 정령, 침묵과 상징으로 가득한 성장 영화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데뷔작 『벌집의 정령(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적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의 레이어가 층층이 쌓여 있는 정서적인 지도와 같습니다. 1940년대 초반 프랑코 독재 정권 직후의 스페인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여섯 살 소녀 아나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린 소녀의 세계를 따라가는 만큼 현실과 상상, 감정과 환상이 섬세하게 교차하며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가 관객에게 큰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속 주요 상징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의미의 밀도를 더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켄슈타인 영화에 감화된 아나가 떠올리는 ‘괴물’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공포가 아니라 억압된 사회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은유합니다. 벌집은 전체주의 체제를 상징하며 창문은 바깥세상과 내면의 경계입니다. 이러한 상징은 스토리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함과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만의 해석을 만들 수 있도록 열어둡니다. 이 영화의 연출은 극도로 정적이며 대사보다는 시선, 표정, 조명으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절제되어 있고 배경과 소품 하나하나가 인물의 심리를 대신 설명합니다. 『벌집의 정령』은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니라 억압받는 개인의 내면과 상상력의 해방을 다룬 철학적인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입문자에게는 처음에 낯설 수 있지만 한 번 빠져들면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영화로 기억에 남을 작품입니다.

영화 『남쪽』, 가족과 기억의 조용한 이야기 

1983년에 발표된 『남쪽(El Sur)』은 에리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보다 성숙한 영화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스페인 북부 지방을 배경으로 주인공 에스테렐라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감정과 기억을 따라가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에스테렐라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려는 과정 속에서 펼쳐지며 직접적인 갈등이나 사건보다는 기억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감정선을 만들어갑니다. '남쪽'이라는 공간은 에스테렐라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러나 아버지가 온 곳이자 그가 늘 그리워했던 장소로 단지 지리적인 공간을 넘어 이상, 비밀, 미완의 감정을 상징합니다. 이 영화는 플래시백이나 설명적 대사 없이 공간과 빛, 인물의 침묵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특히, 아버지가 감추고 있던 과거와 그가 왜 점점 침묵하게 되었는지를 에스테렐라가 눈빛과 풍경 속에서 알아가는 과정은 무척 감성적으로 그려집니다. 조명 연출 또한 인물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담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아버지의 방 안에 비추는 빛의 방향과 색감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남쪽』은 원래 장편으로 기획되었으나 여러 제작상의 문제로 인해 절반 정도만 완성되어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미완의 형태가 영화에 더 큰 상상력을 부여하며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울림을 주는 에리세 특유의 스타일을 강화합니다. 가족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영화는 더할 나위 없는 감상 경험이 될 것입니다.

초보자를 위한 감상 팁과 관람 포인트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영화는 기존의 빠른 전개나 명확한 스토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도전적인 작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오히려 그런 ‘낯섦’ 속에서 진정한 영화적 감동을 선사합니다. 에리세의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끼는 것’입니다. 각 장면에 담긴 상징, 조명, 공간의 의미를 해석하려 애쓰기보다는, 그 장면이 전하는 감정의 분위기와 인물의 내면 흐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벌집이 정령』에서 소녀 아나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단순한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상상, 그리고 억압된 현실에 대한 탈출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관객이 감정적으로 다가갈 때 더 잘 이해됩니다. 『남쪽』에서는 인물 간 대화보다 풍경이나 방 안의 정적이 훨씬 많은 의미를 지니므로 장면 간의 연결보다 감정 간의 연결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리세의 영화는 한 편의 시나 그림처럼 감상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배경 지식 없이도 가능하지만 당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이나 감독의 철학에 대해 조금만 알고 본다면 훨씬 더 풍성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초보자에게는 자막에만 의존하지 말고 인물의 표정, 조명, 소리 없는 순간에도 집중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것은 에리세 영화가 끝난 뒤가 진짜 시작임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관객이 스스로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를 가진 그의 영화는 반복해서 볼수록 더 많은 감정을 발견하게 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선 감정의 흐름과 철학이 살아 있는 예술입니다. 『벌집의 정령』과 『남쪽』은 그의 세계에 처음 들어서는 관객에게 가장 적합한 입문작입니다. 느리고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을 원한다면 이 두 편의 작품은 반드시 한 번쯤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